[스크랩] 나만의 커피를 내리며
나만의 커피를 내리며
허경택(상지영서대학 관광조리음료과 교수
한국커피교육협의회 회장)
짙은 안개가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은 왠지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머리를 쳐 든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마시는 커피는 온 옴에 에너지를 구석구석까지 운반해 주기 때문에 나는 아침에 마시는 커피를 너무나 좋아한다. 오늘은 여느 때와는 다른,좀 색다르게 커피를 즐기고 싶다.
커피를 내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나는 그 중에서도 오랫동안 일본 ‘칼리타’ 회사에서 만든 드립퍼로 커피를 내려서 마셔왔다. 칼리타 드립퍼에 커피 가루를 12그램 정도 붓고 거기에 87도 정도의 뜨거운 물을 가느다란 주전자를 사용하여 모기향과 같은 나선 모양으로 물을 커피 가루 위에 얹는다는 기분으로 주입하여 커피를 내려서 즐겨왔다. 2년 전인가 보다. 우리 집 아이들과 그 또래들을 데리고 스키장에 갔을 때 난 난생 처음으로 배낭 속에 그 커피 추출 도구를 넣고 창 밖에 스키어들이 밝은 조명아래 스키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커피를 내려 그 맛과 향을 여유롭게 즐긴 적이 있었다. 삶은 이래야 되는거야, 하고 자족하면서.
얼마 전부턴 일본에서 개발된 또 다른 추출 기구인 ‘코노’ 드립퍼를 사용하여 커피를 내려왔다. 코노는 칼리타가 구멍이 3개인데 비하여 커다란 구멍이 1개 이며 그 추출 방법이 일반적으로 물방울을 똑똑 떨어트려(점적) 뜸을 들인 후에 사슬 모양으로 물을 커피 가루 위에 주입하여 추출하는 방법이다. 코노 드립퍼는 칼리타와는 달리 커피 추출법이 숙달되지 않으면 좋은 커피 맛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내가 잘 아는 분이 포항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계신데 이 분은 오로지 코노 드립퍼만을 사용하여 커피를 내려 손님에게 서빙하고 있다. 그 가게에서 최상의 커피를 손님에게 대접하기 위해선 이 방법이 최고라는 신념에서이다.
오늘 아침엔 좀 더 사치를 부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어제 물에 담가 둔 ‘융드립퍼’를 꺼집어 내어 여분의 물기를 제거하여 거기에 커피 가루 20그램을 넣고 점적 방식으로 뜸을 들인 후에 사슬 모양으로 물을 주입하여 커피를 내렸다. 오늘 사용한 커피는 내가 직접 일본 '후지로얄‘ 배전기를 사용하여 커피콩을 볶은 ’코스타리카 따라쥬‘라고 하는 원두였다. 나는 이 커피를 강하게 볶지 않고 상큼한 맛이 나도록 중배전 정도로 볶았다. 융드립퍼를 통하여 흘러 내린 커피는 칼리타와는 달리 그 맛이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웠다. 나는 오늘을 시작으로 아마 당분간 이 방식으로 커피를 즐기게 될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방법만 해도 커피를 내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독일에서 제일 먼저 시도된 ‘멜리타’드립퍼가 있고, 가정에서 에스프레소 커피와 유사한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모카 폿트’, 그리고 진공압을 이용하여 눈요기를 할 수 있는 ‘사이폰’이 있다. 그러고 보니 그 옛날 터키에서 가장 원시적으로 커피가루를 뜨거운 물에 푹 침지시켜 추출하는 도구인 ‘이브리크’를 빠트린 것 같다. 2 년 전에 일본 도쿄에 커피 투어를 갔을 때 ‘바하’라고 하는 카페 칸타타를 작곡한 ‘바흐’를 차용한 커피전문점에서 다른 커피와는 달리 고가의 이 메뉴를 시음한 적이 있었다. 이른 바 ‘터키쉬 커피’였다. 손잡이가 달린 동그란 모양의 노란 구리 그릇에 곱게 분쇄한 커피 가루를 넣고 거기에 물과 설탕을 넣어 끓이기를 3 회 반복하여 만든 커피였다. 쟁반에 생과자 ‘마들렌’고 함께 다소 부티나게 제공된 이색적인 이 커피는 여행이란 이렇게 즐거운 것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 주었다.
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조금만 더 커피에 대해서 공부하면 인스턴트 커피에서 느끼지 못하는 생활의 여유로움과 낭만을 원두 커피에서 즐길 수 있다. 삶이란 그렇게 가까운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