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치즈 요리 ‘퐁듀’
정말 오랫만에 퐁듀(Fondue)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다름 사람이 들으면 그까짓 요리 하나에 무슨 큰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하겠지만 나에게 있어 퐁듀는 요리 이상의 다른 아련한 느낌을 주는 대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귀소 본능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있어 퐁듀는 그런 귀소 본능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고 있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과 꿈을 가진 대학생 시절, 깨끗한 물과 푸른 풀을 뜯고 자란 건강한 젖소의 유방에서 분비되어 나오는 하얀 액체인 우유가 갖고 있는 신비함, 그 신비함에 이끌려 나는 1978년 10월에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로부터 6년 가까이 눈만 뜨면 나는 우유를 공부하기에 전 시간을 보냈다. 삭막한 연구실에서 서투른 일본어로 세미나에 참가하고 풀리지 않은 연구 테마에 좌절을 거듭하며 우유 속에 함유되어 있는 물질들을 해명하는데 나의 20대와 30대 초반의 에너지를 몽땅 거기에 쏟았다.
내가 이번에 즐긴 퐁듀는 신선한 샐러드가 먼저 나오고 거기에 와인이 곁들어지고 투박하게 생긴 빨간 색깔의 뚜껑 없는 냄비에 와인과 치즈를 넣고 고형 연료위에 얹어서 가열하여 가느다랗고 길다란 포크로 프랑스빵(바케트빵)을 찍어 냄비에 푹 넣어 치즈를 둘둘 말아 먹는 요리였다. 창밖이 보이는 곳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정갈한 접시위에 놓인 요리를 수다스럽지 않은 깔끔한 여자 아이가 가져다 준 그 요리를 티격태격하며 10년 가까이 우정을 나누고 있는 K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즐긴 그 요리는 지금은 커피의 향과 그 맛에 흠뻑 빠져있는 나에게 우유에 집착했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 때의 고달픔을 보상받고 있는듯한 묘한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20대부터 나는 지금까지 ‘식품’이라는 학문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대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소 바뀌어 왔지만 ‘식품’이라는 범주에서 맴돌고 있다. 가장 왕성한 시기에는 우유와 모유에서 나의 삶의 목표를 세웠고, 규율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나의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었을 때는 한동안 녹차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90년대 말부터 오랫동안 내가 어렸을 때부터 즐기던 빵과 케이크가 나의 관심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빵과 케이크는 원주라는 지역사회에서 내가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고 그것을 통해서 지금까지 나의 삶의 어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발전하였다. 학교 생활이 다소 피로해지자 2002년도에 나는 연구학기제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잠시 떠나 있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때 P선생이 나에게 ‘커피’라고 하는 재미있는 분야가 있으니 관심을 가져 보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커피는 나의 주 관심분야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근간을 이루는 대상은 아직도 우유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녹차를 생각할 때는 ‘밀크티’를, 케이크에도 우유와 버터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커피에도 크림과 카푸치노가 있기에 나는 우유에서 다소 멀어진 나의 관심을 퐁듀를 즐기면서 아직도 우유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노라고 자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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