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커피 교육 봉사 활동

지적 장애인 바리스타,'주라커피1호점'이 특별한 이유

닥터허 2010. 12. 2. 22:41

지적장애인 바리스타, ‘주라커피1호점’이 특별한 이유?

“아침이라, 어떤 커피가 좋아요?”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그래도 아메리카노는 깔끔한 맛이라 개운해요.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해서 가벼운 식사 전후로 마시기 편해요. 한 잔 드릴까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정슬비 양은 앳되고 귀여운 외모의 올해 21살 된 바리스타입니다. 아침 8시 반에 출근해서 오후 5시 반에 퇴근하는 그녀는 귀가 후에도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하는데 열심입니다. ‘주라꿈터’에서 3년간 배운 바리스타 실무를 차분하고 책임감 있게 수행하는 그녀의 직장은 바로 이천시청 3층 ‘채움늘’ 매점에 개설된 <주라커피1호점>.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돕는 것이 향후 계획이라는 정슬비 양의 꿈의 산실입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인 주라꿈터에서 허경택 교수님의 지도로 3년간 커피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어요. 그리고 시설 내에 있는 ‘휴드림’에서 실습을 마쳤고요. 함께 공부한 장애인이 10여 명 정도 되는데 그중 영진오빠와 저만 1호 바리스타가 되어 이곳에 왔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그 외 여러 가지 음식 만드는 일이 좋아요.”

 

이천시청 내 채움늘 매점에 있는 ‘주라커피1호점’

 

지적장애인, 바리스타 될 수 있나?

이곳 <주라커피1호점>에서 일하는 1대 바리스타 정슬비(21) 양의 성격은 차분하고 얌전한 편입니다. 하지만 자폐성향이 강한 지적장애인이죠. 초등학교 5학년(12세) 때 ‘주라꿈터’에 맡겨졌는데 눈도 못 맞출 정도로 소심했다고 합니다. 슬비 양을 낳아준 어머니는 뇌성마비고,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라 매일같이 가정폭력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결국 어머니는 이혼당한 후 남매를 데리고 도망 나와 시설에 맡겨졌습니다. 동생 정현우 군도 현재 자폐1급으로 비슷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정슬비 양은 다른 지적장애인보다 심성이 좋고, 책임감이 강하며, 학습능력이 뛰어나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다릅니다. 예쁘게 생긴 외모 덕에 일반학교 특수학급에서 지내면서도 대인관계가 양호하고 사회성도 좋아 자폐증세가 빠르게 호전되었답니다. 외관상은 거의 못 알아볼 정도죠.

그리고 함께 일하는 김영진(33) 씨는 내성적입니다. 다른 사람과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 지금도 뒤로 숨을 정도입니다. 10년 전 처음 ‘주라꿈터’에 왔을 때 그는 잘 걷지도 못하는 처지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난 후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느라 그를 지하실에 감금했다고 합니다. 누나와 동생도 있지만 학교를 다니고 있던 터라 지적장애를 가진 김영진 씨를 보살필 겨를이 없었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외부와 단절된 김영진 씨는 대인관계가 원만치 않고, 자폐증세가 생겨 23살 청년이 될 때까지 지하실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답니다. 주변에서 연락을 해줘 보호자의 동의하에 시설에 데려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걷는 연습 외에 재활치료를 받으며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한글교육과 더불어 직업으로 바리스타 공부를 하며 “맛있게 드세요”, “어서 오세요” 등 먼저 인사도 하며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답니다. 무엇보다 김영진 씨는 손재주가 있어 커피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답니다.

주라꿈터 김준묵 원장은 “처음에는 걷지도 못하고 대인관계가 안 되어 걱정이 많았죠. 그러나 꾸준한 교육 과정 속에 나날이 향상되면서 저들을 어떻게 사회에 복귀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커피 로스팅 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이 장애인에게도 반복적으로 훈련시키면 바리스타로 생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준비하게 되었습니다”고 그간 정황을 설명합니다.

그렇게 해서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인 ‘주라꿈터’는 2007년 하반기에 계획을 세우고 2008년부터 올 2010년까지 한국커피협회 고문인 상지대 허경택 교수님께 의뢰해 바리스타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답니다. 정슬비 양과 김영진 씨 같은 지적장애인을 교육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역시 ‘숫자개념’에 관한 것이었다죠. 그래도 교수님이나 복지사들, 두 학생 모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반복 훈련을 한 결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고, 시설 내 ‘휴드림’에서 실습도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21세의 정슬비 양과 33세의 김영진 씨는 중증 지적장애인이다.


 

‘주라커피’ 브랜드, 받은 사랑을 사회에 ‘나눠주라’는 뜻?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인 ‘주라꿈터’는 1991년에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이후 2000년도에 법인시설로 인가 받았죠. 처음 이곳을 개설한 김준묵 원장은 장애인을 돌보는 누나의 영향으로 참여하게 되었다고 들려줍니다. “20대 초반까지는 인생을 방황하며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 있는 누님 댁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장애인을 돌보는 누나를 도와주다가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죠. ‘내가 인생을 헛되게 살았구나’ 깨달으면서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어요.”

이어 그는 “그러다가 4년 후인 1992년경에 누님이 돌아가시고 이들 장애인들을 도맡게 되었습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1997년경 이천에 땅을 얻어 이들과 함께 농사나 지으며 살자는 마음으로 내려왔어요. 트랙터를 구입해 농사를 짓게 되었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보살필 장애인 식구가 26명까지 늘어나는 거예요. 제 땅도 아니고 남에게 빌려서 농사를 짓는 처지라 먹고 사는 일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단순한 모임이나 공동체로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법인을 설립하고 꿈터, 쉼터라는 2개의 시설을 만들게 되었어요”라고 덧붙여 설명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주라꿈터’는 자부담으로 작업장을 개설해 ‘병따개(오프너)’ 제조하는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지속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장애인들이 열심히 일해도 늘 수입이 너무 적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준묵 원장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새로운 일거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친척 중에 원두커피를 수입하는 사람이 있어 이를 토대로 장애인 ‘바리스타’ 교육에 뜻을 두게 되었답니다. 지역에 있는 상지대와 연계해 ‘로스팅’ 반복 훈련을 실시했고,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2001년도에 장애인 가족이 모여 오프너를 만드는 제조업을 시작했어요. 3,40명 일해도 한 달 수익은 대체로 150~200만 원 정도였죠. 그것을 분배해도 개개인이 월 5~10만 원, 작게는 2~3만 원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2007년 원두커피를 수입해온 조카를 붙들고 지원을 요청했죠.” 

하지만 이들은 두 가지 문제점에 부딪혔습니다. 첫째는 임대료나 관리비를 낼만한 자본의 부족이고, 둘째는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이랍니다. 많은 고민 끝에 공공기관인 이천시청을 방문해 논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시청이 먼저 돕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에서요. 하지만 이 역시 처음에는 쉽지 않았답니다. 여러 번 조율 끝에 이천시청 사회복지 담당자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주라커피’ 브랜드에 대한 정식적인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게 되었답니다. 이후 사업설명 외에 경기도의 지원을 받게 되었답니다. 무엇보다 ‘주라커피’ 브랜드가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뜻으로 ‘나눠주라’는 뜻을 담고 있어 더욱 좋았다나요? 
 

주라커피1호점에서 제1대 바리스타로 활동하는 정슬비‧김영진 바리스타


‘장애’는 뛰어넘을 수 없지만, ‘기능과 품질’로 도전한다

지적장애인 교육과정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은 역시 커피 배합이었다고 합니다.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 커피 원두를 얼마만큼 로스팅(볶고) 하고, 블렌딩(섞기) 하고, 핸드 드립(내리기) 하는지 알아야만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답니다. 예를 들어 ‘굿모닝 블렌드’의 경우 페루산 원두 30&에 에티오피아산 모카 시다모 40%, 그리고 브라질 산토스 원두 30%를 함께 섞은 후 갈아야 아침 빈속에 마셨을 때도 무리 없이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치랍니다. 결국 일정한 공식으로 꾸준한 훈련과 반복학습, 그리고 땀 흘리는 노력 외에는 답이 없답니다.

현재 ‘주라꿈터’ 시설에 있는 장애인은 지체장애인과 지적장애인 두 그룹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설 내 기숙하는 장애인과 외부에서 교육 받으러 오는 장애인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설도 ‘꿈터’와 ‘쉼터’로 나뉜답니다. 그중 정슬비 양과 김영진 씨 같은 경우는 지적장애인으로 시설 내 기숙하는 중증장애인입니다. 처음 바리스타 교육을 10여 명 시켜보았지만 한계를 느끼고 다른 분야로 전향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하지만 이들 두 사람의 집중적인 교육으로 ‘1대 바리스타’가 배출되었기에 희망을 버리지 않을 생각이랍니다. 

다만 이천지역 외에 경기권 지역 장애인으로 대상으로 넓혀 좀더 포괄적인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랍니다. 올해 용인, 분당 지역 장애인보모회랑 연계해 ‘가능성이 있는 장애인’을 선별해 바리스타 교육을 시킬 방침이 이미 서 있답니다. 이로써 이천시청 <주라커피1호점>을 시작으로 용인시청, 분당구청 등 ‘주라커피’ 2호, 3호, 4호점을 계속해 낼 계획이랍니다. 경기도 10여 개 지역에서 10여 개 커피전문점이 개설된다면 그곳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만도 한 곳당 2명에서 5명 정도 고용되기에 적어도 족히 20명에서 50여명 정도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그러면 장애인 고용율도 높아지고, 더불어 소자본 창업비용도 절감돼 일석이조라는 겁니다. 일반 공장을 지어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일이죠. 


‘주라꿈터’ 김준묵 원장. 장애인 고용을 상담하는 장애인 가족과 주라꿈터 직원들 모습

 

무엇보다 주라꿈터 김준묵 원장은 “장애인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좋은 조건, 좋은 환경에서 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일반 사회들과 접촉하며 신뢰감을 쌓고 대인관계를 유지하면 더없이 바람직한 일이죠. 이러한 곳에서 장애인이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 경제적인 여러 측면에서 유리해요. 또한 그런 측면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기업식으로 우리나라에 커피전문점을 만들어 장애인 일거리를 창출하면 비전이 있죠. 그런 목적으로 이 일을 해나가자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고 들려줍니다.

제 장애인들도 3D업종의 제조, 수공, 가공 계통에서 진일보해 홍보마케팅이 가능한 직업에서 종사할 수 있다는 꿈이 있습니다. 과거 쓰레기봉투, 양말, 장갑, 복사기 용지를 만들던 데서 벗어나 제과제빵 외에 원두커피 가공하는 일에도 심혈을 기울일 수 있죠. 처음에는 긴장되지만 지금은 여러 면에서 자신감도 붙고 수익성도 훨씬 좋은 바리스타 일을 적극 권한답니다. 다만 ‘장애’는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들이 가진 무궁한 ‘노력’과 ‘기술’과 원두커피의 좋은 ‘품질’로 승부할 터라고 밝힙니다. 


글·사진  안수지 기자 asj25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