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교차로-허경택의 커피 이야기

베트남 호치민시 대통령궁의 융 드립 커피

닥터허 2008. 5. 6. 06:43

   커피를 내리는 방법 중에서 융 드립(frannel drip)법은 사용상의 번잡함이 그것의 사용을 어렵게 만들고 있지만 핸드 드립법으로 내리는 커피 중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법으로 알려져 있다. 융 드립이란 한쪽 면에 기모(起毛)가 있는 융을 사용하여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말하는데 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을 주입하여 이른바 뜸을 들였을 때 한껏 부풀어 오르는 커피의 입자가 아무런 제약 없이 팽창되기 때문에 다른 커피 추출법에 비하여 부드러운 커피를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최근 우리가 살고 있는 원주에서도 융 드립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커피 전문점이 늘어나고 있다.

  

   융 드립이라고 하면 나는 5년 전의 나의 수첩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도쿄에 커피 투어를 갔을 때의 기록이다. 아오야마에 있는 ‘다이보 커피점’은 사장이 자신의 이름인 ‘다이보 가츠지’를 따서 작명한 것으로서 내가 그곳에 들렀을 때 그는 커피 잔을 뜨거운 물로 정성스럽게 데우고 또 마른 걸레로 물기를 제거하는 단순한 동작에서도 그가 커피 장인의 기질을 가졌다는 것을 은연중에 엿볼 수 있을 정도로 동작 하나하나에 신중함과 손님에게 가장 맛있는 커피를 서비스 하겠다는 의지가 배어있었다. 그 당시 커피 경력 32년째인 그는 28년 전에 이곳에서 개업하여 수동식 배전기를 사용하고 융 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지켜오고 있었다. 용량 1kg의 수동식 배전기로 하루 6-8회,개스 직화식으로 커피를 배전하며 풀시티와 프렌치 배전 사이의 미묘한 맛의 변화와 차이를 오로지 수동식 배전기만이 할 수 있다고 하여 커피 배전기가 발달한 일본 도쿄의 중심부인 그곳에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그 배전기로 자기가 원하는 커피 맛을 재현하고 있었다. 한번 배전하는데 30분이 걸린다니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얻기 위하여 쏟는 그의 정성과 인내심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융 드립으로 20g의 원두에서 100cc를 추출하며 블렌딩 커피로서 예멘, 에디오피아, 브라질, 콜롬비아 4종류를 블렌딩하여 오른 손으로 커피 폿트로 물을 따르고 왼 손에 커피 가루가 잔뜩 들어있는 융 드립퍼에 뜨거운 물을 한 방울씩 주입하는 그의 커피에 대한 집념은 나로서는 흉내조차 내기 힘든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지난 겨울 방학에 동료들과 더불어 베트남 커피 농장을 견학하면서 우연히 들른 호치민시의 패망한 월남 대통령 궁의 주방에서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융 드립 커피와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그 곳을 수십 번이나 여행객을 안내하였던 커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지 못한 한국인 가이드가 무심코 지나치기만 하였던 그 곳에서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든 대용량의 융 드립퍼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1960년대에 일본에서 제작된 큼지막한 융 드립퍼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다시 실감날 정도로 단순히 물 끓이는 도구로만 알고 무수한 사람들의 시선을 스치기만 하다가 드디어 제 주인을 만나 커피를 추출하는 융 드립퍼로 자리매김 하여 그 가이드로 하여금 업 그레이드된 관광 안내를 가능케 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단관 지구와 로데오 거리, 그리고 롯데 시네마 근처에서 우리는 융 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커피 전문점을 만날 수 있다. 어제 내가 그곳에서 시음한 케냐 커피는 상큼한 신 맛을 내고 있었다. 원주에서만이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로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