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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커피는 생선과 같다

닥터허 2007. 5. 13. 23:25
제목 :   [칼럼] 커피는 생선과 같다
글쓴이 :   허경택 등록일 :   2006/04/09 조회수 :   19
커피는 생선과 같다  

                                      허경택(상지영서대학 관광조리음료과 교수)

 얼마 전에 초,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집 얘들과 아이들 친구 3명을 데리고 콘도를 다녀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6개월 전인 지난 방학 때  얘들을 데리고 콘도를 다녀오고 나서 아이들과 어울리며 놀기 위하여 콘도에 간 것은 그  이후로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토요일이지만 날씨가 좀 우중충해서 그런지 붐비지는 않았습니다. 짐을 풀고 1층 로비로 가서 어떤 시설이 갖추어져있나 하고 휙 둘러  보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관심을 가진 곳은 그 중에서도 커피점이었습니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가 눈에 띄어 나중에 한번 들러서 커피 맛을 봐야지,하고 뜸을 들였습니다.

 내가 들렀을 때는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대였습니다. 작은 박스 안에 유니폼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자 직원이 커피를 서빙하고 있었습니다. 내부에는 커피를 추출하는 기구인 에스프레소 머신 한대와 커피콩 분쇄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뭘 주문할까?하고 메뉴판을 보다가 우유가 들어있는 커피는 마시고 싶지 않아서 ''레귤러 커피''라고 되어 있는 원두커피를 주문하였습니다. 내가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손님 두 분이 와서 커피를 주문하는걸 보면 이곳은 상당히 판매가 잘 되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커피를 주문하고 무료하기도 하여 별 생각 없이 박스 내부를 들여다보다가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커피 콩 분쇄기 통 안에는 분쇄한 커피 가루가 수북히 쌓여있고, 또 에스프레소 머신에 부착되어 있는 우유 거품을 만드는 노즐은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서 우유 찌꺼기가 달라붙어 노랗게 변색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유심히 그 사람이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손님이 카페 라테를 주문하니 아까 사용한 포터 필터를 툭툭 털어 커피 가루를 털어 내더니 그것을 깨끗이 훔치지도 않고 거기에 언제 분쇄한 커피 가루인지는 모르지만 커피 가루를 채우는가 하면 우유를 데우고 거품을 낼 때는 노랗게 찌든 그 노즐을 푹 집어넣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만 질리고 말았습니다.

 그 직원은 커피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과 또 오늘은 비교적 한가하지만 다른 때는 굉장히 바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서는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일들을 몇 마디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4,5명의 손님이 그 앞에서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호기심이 또 발동하여 옆으로 가서 에스프레소 머신에 부착되어 있는 그 문제의 노즐을 유심히 보았더니 어제와 전혀 다르지 않는 누런 모습이었습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반자동머신이었으며 사용한 커피 가루도 이탈리아에서 수입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였습니다. 저는 기계가 우수하다고 해서, 그리고 유명 브랜드의 수입 커피 가루를 쓴다고 해서 커피 맛이 좋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말하고 싶습니다. 커피를  내리는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그 사람이 커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손님에게 최상의 커피를 서빙하고 싶다는 열정을 가져야만 커피 맛이 좋아지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최근 2-3년 사이에 많은 테이크 아웃형의 커피점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아온 저로서는 이와 같은 모습의 커피점이 아직도 수도권에서 가까운 유명 콘도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픈 뿐입니다.

 커피는 생선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생선은 부패하기 쉬운 식품이지요. 커피도 그렇습니다. 생선을 아무렇게나 관리해서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듯이 커피도 그 관리가 철저하지 못하면 커피의 맛과 향기가 소실되어 맛없는 커피가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공기와 오랫동안 접촉된 커피로부터 유해 성분이 생성되어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커피의 품질에 유독 관심을 쏟는 저마져도  품질이 열화된 커피를 마시고 배탈이 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커피는 물 다음으로 우리가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수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인스턴트 커피 문화에 젖어 있다가 지난 90년대 말부터 겨우 일기 시작한 고급 원두커피문화의 확산을 지켜내지 못하고 커피를 판매하여 부를 축적하는 데에만 신경을 쓴다면 커피 문화의 정착은 요원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품의 질에 대한 작은 정성의 표출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커피대학
글쓴이 : 원주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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