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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들과 함께 한 5일간의 도쿄 배낭 여행

닥터허 2007. 5. 13. 23:38
 

아들과 함께 한 5일간의 도쿄 배낭 여행 


   아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을 때 아들이 대학생이 되면 내가 가고 싶어 하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아들이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키는 나보다 훨씬 커서 175나 되는데 얼마 전에 가벼운 몸살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 말씀이 아직 성장 판이 닫혀있지 않아 키가 더  클 거 같다고 하셨다고 좋아라 하고 있다. 성적은 상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성적이라는 게 창의적이지 못하고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의 결과인 것처럼 보여서 순위를 유지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그 애의 성장과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까를 생각하면 걱정이 될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탈 없이 잘 자라주는 모습에 안도하고 있다.

    아들과 5일간의 일본 도쿄 배낭 여행을 다녀왔다. 여유있는 생활 형편은 아니었지만 그 아이가 어렸을 때 가입한 적금이 만기가 되어서 생각지 않은 때에 수중에 약간의 돈이 들어와서 아이를 위하여 마련한 용도였기에 아이를 위하여 쓰자고 하여 생각해 낸 것이 일본 여행이었다. 일본은 아들이 3살 때 62일간 살다 온 곳이었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외국인데다가 아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외국에 있는 친척을 방문한다던가 아니면 단체 여행을 다녀 온 적은 있었지만 이런 형태의 여행은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서 다소 긴장하였지만 덩치 큰 아들을 데리고 가는 여행이라서 잘 되겠지 하는 생각에 부닥쳐 보기로 하였다.

   일본이라는 국가는 나에게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드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 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는 나라, 내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적에 6년 가까이 생활한 적이 있는 나라, 그리고 나의 가족과 인연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내가 애증을 갖고 있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내가 가진 이런 선입견을 모두 버리고 그리고 아들에게 주입하지 말고 오로지 아들의 수준과 시선에서 일본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생각으로 출발하였다.

   도쿄 비즈니스 호텔은 내가 지금 껏 살아오면서 투숙한 적이 있는 호텔 중에서 가장 좁은 방이었다. 침대가 놓여있는 그 방은 두 사람이 서로 몸을 비켜가기가 불가능한 좁디 좁은 방이었다. 그 방에 짐을 풀고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는 시부야에 갔다. 시부야에는 아들이 영화에서 보기도 하고 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역 앞에서 유명을 달리한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를 그린  ‘하치 이야기’의 주인공인 하치 동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치 동상 주위에는 마침 토요일 저녁이라 수 많은 젊은이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커다란 빌딩과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홍수 속에서 하치 동상 주위에 있는 젊은 여자애들이 친구를 기다리면서 뿜어대는 담배 연기에 어린 아들은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까이 있는 식당에서 우린 ‘함부르그 스테이크’를 주문하였다. 차가운 토마토가 껍질이 벗겨진 채 속살을 드러내고 우리 앞에 놓여졌다. 여행의 여독을 씻어 주기라도 하듯 차가운 토마토는 입안에서 식욕을 자극시켜 주었다. 이어 가져온 메인메뉴는 알미늄 호일에 포장되어 있었다.  포크로 호일을 벗겨내자 안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함부르그 스테이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입 천장이 데일라(얼마 전에 입 천장이 데어서 혼이 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조심조심 하면서 포크로 가장자리를 찍어 소스를 약간 발라 입에 가져가서 맛을 음미하던 아들의 첫 마디는 ‘아! 맛있다’였다. 이번 여행에서는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곳의 음식을 즐겨보자고 한 의도는 이  첫 번째의 시도에서 성공적인 출발을 가져온 셈이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도쿄’를 선택한 것은 아들에게 일본의 현재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일본의 과거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교토,나라 또는 히로시마를 보여주어야 했지만 아직 아들은 앞으로 더 성장하고 더 발전해 나가야할 연령이기 때문에 과거보담은 현재의 일본 모습을 이번 기회에 먼저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일요일엔 역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하라주쿠’에 갔다. 진구바시와 메이지진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메이지진구’는 일본 천황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로 마찰이 일어날 때마다

‘야스쿠니신사’가 매스콤에 자주 오르내리다보니 아들은 '도대체 신사가 어떤 곳인가?' 하고 궁금하였던 모양이었다. 하라주쿠의 진구바시에서는 10대 소녀들이 이상야릇한 복장과 화장으로 오가는 사람의 시선을 끄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곳에서 아들은 그 소녀들과 함께 사진 찍는 것을 권하였지만  회피하기만 하였다. 그 자리에서는 쑥쓰럽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호텔에 돌아와서는  무서웠다고 하였다. 같은 또래의 여학생들의 세계를 수용하기에는 아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용납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다케시다도오리에서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의 새카만 머리가 골목길을 꽉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다이바’와 ‘롯뽄기 힐즈’에서는 발전된 일본의 오늘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롯뽄기 힐즈는 문화적 공간을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었다. 모리아츠센터 52층에서는 때마침 애니메이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아들은 세살 때부터 친숙했던 여러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나에게 설명해 주었지마는 대부분 생소하기만 하였다. 아키하바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상가라고 할 수 있다. 아들은 그곳에서 동전을 넣고 뽑기를 하여 자기가 원하던 ‘피규어’가 나오면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애니메이션과 피규어, 신쥬쿠의 ‘다코야키(낙지구이)’ 오모테산도에서 즐긴 ‘회전초밥’, 긴쟈에서 먹은 ‘우동’은 나의 아들에게 국적을 초월하여 하나의 문화적인 콘텐츠로서 자리매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쟈에 있는 백화점에 걸려있는 ‘中元’이라는 리본을 보고 그 뜻을 뭇 길래 일본은 백중날을 ‘쮸겐(中元)’이라고 하여 선물을 하며, 양력 8월 15일이라고 하였더니 ‘그럼 일본은 백중날에 원자폭탄을 맞았네’ 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게 아닌가. 그 분위기에서 나는 아들이 그것을  연상하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나는 백중날은 아니지만 그 해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과 전쟁의 옳고 나쁨을 떠나 어떤 전쟁이던 간에 그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특히 연약한 어린 아이들과 여자들이 피해를 많이 본다는 사실을 한편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일본 제일의 번화가인 긴쟈에 있는 ‘미츠코시(三越)’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설명하였다.

    아들은 그가 가 본 여행 코스 중에서 하라주쿠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하였다. 역시 아들의 세대는 나의  세대와 다르다는 것을 말해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인 콘텐츠가 많이 개발되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아들에게 있어서 아버지 세대들과는 다른 새로운 국제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까 하는 것을 생각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마음 저 깊은 곳에 교육을 통하여 과거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인 사건들을 알고 있는 아들에게 그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한편은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보는 면이 나와는 또 다른 시선을 갖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이번 여행이 아들의 정신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지 않나하고 생각되었다. 텔레비 프로그램에서 본 한국 연예인에 대한 일본 연예인들의 호감의 표출은 20여 년 전 나의 일본 유학 시절에는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그 만큼 사람의 마음은 변하고 있고 세계도 변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출처 : 카페 스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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