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비화] |
스타벅스! 세계인의 입맛 점령한 커피군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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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공한 이탈리아식 커피 바
또한 에스프레소 바에는 무뚝뚝한 웨이터가 아니라 배리스타라고 하는 전문적인 점원들이 있다. 이들은 물건을 파는 종업원이 아니라 자신이 파는 커피의 맛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며 또한 손님들과 인생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낭만주의자들이다. 배리스타는 그곳 이웃들로부터 존경받는 예술가다.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커피를 고객에게 전달할 적당한 형식을 찾고 있던 하워드는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바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는 미국의 거리에 에스프레소 바 스타일의 커피 바를 개장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그것은 스타벅스 창업자들의 비전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들은 스타벅스는 소매점이지 레스토랑이나 바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더욱 문제는 스타벅스가 그때까지 흑자를 내는 튼튼한 회사였다는 점이다. 자체 강점을 지니고 잘 운영되고 있는 회사를 왜 낯선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는가. 이러한 반감을 기존 경영자들은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워드가 스타벅스에 입사하기 위해 제리를 설득하는 데 1년이 걸렸듯이 커피 바의 개장을 설득하는 데도 1년이 걸렸다. 결국 1984년 4월 시애틀 시내에 여섯번째 스타벅스 스토어를 열면서 그 한쪽 구석에 에스프레소 바를 시험 운영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날 즐겨 가는 스타벅스의 탄생 순간이다.
첫번째 실험은 대단한 성공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배리스타들이 아무리 바쁘게 일해도 고객이 넘쳐 가게 밖으로 긴 줄이 생겨났다. 하지만 에스프레소 바의 성공은 스타벅스 창업자와 하워드간의 노선 차이를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몰고갔다. 새 사업이 성공할수록 창업자 제리는 회사의 방향성이 흔들리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으며 결국 이들은 결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스타벅스 측의 상당 지분을 보유한 새로운 법인이 하워드의 주도로 탄생해 본격적인 에스프레소 바 사업을 전개하게 되었다. 그는 사업의 기본개념이 이탈리아에서 온 것을 강조하여 ‘일 지오날레’라고 자신의 회사 이름을 지었다. 자기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컨트롤하겠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 하워드는 드디어 자기만의 회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문제는 투자였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회사의 창업자들조차 설득시키지 못한 사업을, 아직 강배전이나 아라비카보다는 맥스웰 커피에 익숙한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투자자들을 찾아다니면서 하워드는 계속 거절당했다. 단순히 거절만이 아니라 실현가능성 없는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몽상가 취급을 받으면서 굴욕감을 느꼈다. 그는 빈민가 출신으로 모멸을 당한 청소년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하워드는 억척같이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한 끝에 30명의 투자자로부터 165만달러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특별한 네트워크를 동원하지도 않았고 편법을 쓴 것도 없었다. 오로지 그의 아이디어, 강배전한 아라비카 커피를 에스프레소 타입의 바에서 제공하자는 아이디어에 사람들이 공감한 결과였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바에서는 늘 오페라를 틀었으나 미국의 고객들은 곧 불평을 늘어놓았다. 일 지오날레는 곧 음악을 다양화했으며 나비 넥타이 정장을 하고 있던 배리스타들의 복장도 자율화했다. 이탈리아의 요소를 들여온다고 해서 모든 것을 경직되게 운용할 필요는 없으며 새로운 환경에 맞게 적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커피를 와인처럼 다루다 이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1987년 스타벅스 창업자들은 커피 원료 사업에 더욱 전념하기 위해 소매점 사업과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것은 하워드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의 지원까지 받아가면서 어렵게 스타벅스를 인수했다. 1983년 스타벅스를 떠난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이제 스타벅스의 CEO가 된 것이다.
인수 이후 회사의 이름을 두고 잠시 논란이 일었다. 스타벅스란 이름이 제리 등 시애틀의 창업자들이 문학적 취향을 가미하여 만든 것임은 이미 말한 대로다. 하워드는 스타벅스를 떠나면서 이탈리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일 지오날레라는 자기 고유의 이름을 만들었다. 그는 이 이름에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 자체 강점을 지니고 있는 스타벅스라는 이름을 택하고, 자신이 만든 일 지오날레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만약 그가 일 지오날레라는 이름을 고집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스타벅스의 이야기는 큰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에센스에 관한 이야기다. 그 에센스란 결국 최적의 향기와 맛을 담은 커피다. 이것이 없다면 아무런 이야기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워드 슐츠가 시애틀을 방문했을 때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도록 만든 것이 바로 이 강배전한 커피 열매의 향기였다. 그리고 또한 그가 전 미국인, 더 나아가 세계인을 자신의 커피 바로 몰려들게 만든 것도 결국은 그 향기 덕분이다. 그러나 에센스만으로 스타벅스 제국을 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환경에 따라서 변신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한 것이다.
처음에 스타벅스 창업자들은 커피 바를 개장한다는 생각에 반감을 품었고 결국 그것 때문에 하워드와의 결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워드가 항상 변화의 주역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워드도 자신의 세계가 어느 정도 정착된 후에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것은 무지방우유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을 때 나타났다. 무지방우유를 넣은 커피를 원하는 고객이 늘고 있었으나 하워드는 그러한 제품을 공급하기를 거부했다. 스타벅스의 미션은 순수한 커피를 미국에 제공하는 것이다. 하워드는 탈지우유가 묽고 맛이 강하기 때문에 스타벅스 커피의 맛을 바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커피의 맛, 이것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지고의 가치다.
프랜차이즈를 거부하는 회사 그러나 1989년 어느날 하워드는 시애틀의 한 스타벅스 스토어에서 젊은 여자 고객이 무지방우유를 넣은 라떼를 요구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배리스타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그러한 제품이 없다고 답하자 그녀는 다른 가게를 찾아갔다. 그 순간의 느낌을 하워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잃어버린 한명의 고객, 소매업자를 두고 그 이상 무슨 논쟁이 필요하겠는가!” 그는 즉시 무지방우유를 넣은 제품을 공급하도록 회사 정책을 바꾸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고객만족경영의 마인드다. 사실 하워드가 스타벅스의 직원으로서 일할 때 그는 이 회사의 문제점 중 하나가 고객에 대한 지나친 고자세임을 의식하고 있었다. 고객들이 잘 모르는 고급 원두커피를 다루다보니 이 회사의 종업원들은 고객에 순응하기보다는 고객을 가르치는 자세를 취하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에서 친절한 서비스보다는 때로 불손한 태도가 나타나기도 했던 것이다. 하워드는 이러한 풍토를 제거하고 고객만족체제로의 변신을 시도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것은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이 가지지 못한 미국식 경영의 강점이다.
제품의 다양화에 대해서 스타벅스는 점차 탄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심지어 스타벅스는 1994년 펩시콜라와의 제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까지 했다. 원두커피 회사와 청량음료 회사가 만나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그것은 캔으로 포장된 냉커피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스타벅스는 이제 커피의 순수성에 대한 집착을 버린 듯하다.
그러나 커피의 맛과 향기야말로 이 회사의 본질이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산이다. 결국 제품은 다양해질지라도 제품 하나 하나의 품질에 편집광적으로 집착함으로써 스타벅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해 간다. 하워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나이키가 모든 생산공장을 다 직접 소유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또는 펩시콜라 한잔을 먹으려 해도 펩시콜라 가게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스타벅스는 생산과정과 판매과정 그 어느 것도 아웃소싱할 수 없는 회사다. 생두를 볶는 배전기에서부터 소비자의 입까지 전과정을 다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워드는 자신의 집무실 창문에서 배전기의 작동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또한 스타벅스는 결코 프랜차이즈를 허용하지 않으며 전부 회사에서 직영하는 스토어들이다. 하워드는 “프랜차이즈란 우리와 고객 사이를 가로막는 중간상인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원두에서 마지막 에스프레소 바의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에 대한 장인다운 집착과 노력이 스타벅스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커피를 와인처럼 다루는 회사의 태도야말로 스타벅스의 불변하는 정체성인 것이다.
‘네 마음을 다 쏟아 부어라’ 비정규직에까지 의료보험을 제공한다는 스타벅스의 사원복지 정책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하워드는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우선 종업원들의 신뢰를 얻으라는 명확한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가 실패한 아버지로부터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만약 사회와 기업이 좀더 합리적이고 정상적이었다면 아버지는 패배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약간의 후원과 약간의 기회가 박탈됨으로써 한 인간의 생애가 실패로 귀결된다. 하워드는 이러한 신념 아래 종업원들에게 일과성의 계약이 아닌 신뢰로 맺어진 더욱 깊은 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하워드가 직접 저술한 스타벅스 성공에 관한 저서는 그 제목이 ‘네 마음을 다 쏟아 부어라(Pour your heart into it)’이다. 이것은 그의 인생 좌우명이기도 하고 자신의 부하직원들에게 던지는 요구이기도 하다. 특히 스타벅스의 최전선인 에스프레소 바의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배리스타들은 단순한 점원이 아니다. 이들은 커피와 인간을 사랑하고 자기의 일에 긍지를 느껴야 한다. 이들이 일과 고객에 전념할 수 있도록 조직은 특별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워드가 부하를 관리하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스타벅스는 1994년 심각한 냉해로 인한 커피 가격 급등으로 큰 위기를 겪었다. 커피 가격은 3개월 만에 4배 이상 올랐다. 가격이 이 상황에 이르렀을 때 회사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판단하고 지금 대량 구매를 할 것인가, 아니면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판단하고 구매를 보류할 것인가. 이것은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었다. 금융전문가 오린은 시장의 상황을 예측하려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자고 제안했다. 즉 현재 가격으로 구매를 하면 어렵겠지만 회사는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가격이 더 오른다면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린의 권고에 따라 회사는 커피를 대량 구매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커피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벅스는 가격이 정점에 달했을 때 엄청난 양의 원료 구매를 단행한 꼴이 됐다. 그 시기 이후 고가의 재고로 인한 부담이 회사를 괴롭혔으며 이 부담에서 벗어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러나 하워드는 결코 오린을 탓하지 않았으며 이후 회사의 합리화계획 추진 책임자로서 그를 계속 중용했다. 오린은 최악을 피하고자 한 것이며 그의 제안에는 논리적 하자가 없었다. 과연 스타벅스는 그 시기를 견뎌냈으며 전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만약 가격이 더 올랐다면 회사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워드는 오히려 고가의 원자재 부담 아래서 경영을 함으로써 낭비요인을 제거하고 회사의 조직과 업무 프로세스를 재정비하는 기회를 얻었다고 오린을 두둔하였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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