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요리사
우연히 거실 오디오 위에 놓여있던 중학교에 갓 입학한 두 째 아들이 학교로부터 받아서 제출하게 되는 한 장의 유인물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 본인의 장래 희망이라는 것을 쓰도록 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아들은 ‘요리사’라고 뚜렷하게 기록해 둔 것을 보고 나는 피식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딸을 둔 어머니가 학교에 제출한 서류에 딸아이가 장래 희망을 ‘케이크 디자이너’라고 해서 제출하였더니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주시면서 그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이냐고 묻더라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50대 중반을 넘긴 나조차도 앞으로 무슨 일을 더 해 봤으면 하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꿈이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을 까하는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되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이 어디 한, 두 개 뿐이었겠는가? 그 중에서 성취된 것은 정말 몇 백 분의 일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아들이 요리사라고 적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영향을 받은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에 음식과 관련되어 나의 영향을 받은 것을 곰곰 생각해 보니 한, 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 우선 집에 비치해 두고 자주 읽는 만화책만 하더라도 다른 만화책은 사주지 않지만 음식 문화와 관련된 ‘초밥왕’은 한 질을 사서 열심히 읽으라고 격려까지 해 주었고 ‘식객’이라던지 ‘신의 물방울’이라던지 하는 책은 서점에 들러서 후속 편이 나오면 지체하지 않고 사들고 왔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3년 전에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커피 농장을 견학하는데도 데려가기도 하였고 학교 실습실에서 초콜릿을 만들 때도 한 번 만들어 보라고 실습할 기회도 주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이른바 서양요리를 접해 볼 기회가 없어서 성장해서 포크와 나이프를 다루는 것이 꽤 스트레스가 되었는데 내 아들은 좀 더 글로벌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포크와 나이프의 사용법을 익히게 했더니 지금은 어떤 장소에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고기를 잘라 입으로 가져가는 정도까지 되었다. 내가 집에서 커피를 내리고 또 와인을 마실 때면 나는 조그만 잔을 마련해서 향기와 맛을 느껴보라고 아들에게 권하기도 한다.
사람이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하루 24시간에 하는 일 중에 음식을 먹는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건강을 위해서 먹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서 음식을 가까이 하기도 한다. 결혼식이라던가 생일이라던가 축하해야할 일이 있으면 반듯이 음식이 뒤따른다. 음식을 가까이하지 않고서는 결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가 느끼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라는 직업은 최근의 매스콤에서 다루었던 ‘대장금’이라던가 삼순이가 파티셰로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의 영향이 있기 전까지는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지기에는 다소 생소한 분야였다. 4년 전에 레스토랑을 개업한 사장님은 요리사라는 직업이 정말로 좋은 직업이더라고 하던 말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기가 쉽지 않고 또 전통적인 유교 문화에 오랫동안 젖어있다 보니 남자로서 요리를 직업으로 하는 일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와는 풍토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음식 문화가 발달된 프랑스에서 유명한 요리사가 유명을 달리 했을 때 그 나라의 수상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조사를 발표하였다는 보도를 접하고 문화의 차이가 이렇게도 있었던가 하고 새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얼마 전 영국에서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제이미 올리버가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쪽에서의 직업 문화는 우리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런던에서는 록스타보다, 뉴욕에서는 야구선수보다 셰프(요리사)가 더 유명하다고 한다.
서울 강남에 있는 청담동은 우리나라에서 음식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유명하다. 나도 직업의 성격상 가끔 그곳에 들러 커피와 요리 그리고 와인을 즐길 때가 있다. 호텔보다도 깔끔하고 편안한 그곳이 더 나의 발길을 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는 레스토랑의 규모와 인테리아 그리고 미각을 돋구는 음식의 맛이 셰프가 가진 능력 외에 세련된 감각을 갖고 있는 후원자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자본과 기술의 합작이라고나 할까. 오랫동안 자본의 그늘에 가려서 그 존재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셰프가 드디어 자본주와 동등하게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 놓았다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아니 더 나아가서 자본주보다 셰프가 앞으로는 더 인기있는 존재로서 부각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오페라의 극단주보다 가수가 더 유명하고 영화 제작자보다 배우가 더 인기있는 것과 같이 오래지않아 셰프가 그 주인공으로 대중의 환호를 받으며 우리 앞에 화려하게 부상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지난 번 가 본 청담동의 와인 바에는 의과대학 졸업생이 주방장으로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 남 보기에는 좋지만 그의 적성에는 맞지 않는 일보다는 그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열심히 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의 세대는 나의 세대가 갖고 있는 편견과 무지가 통용될 시대가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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