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체리 따는 아이들
허경택(상지영서대학 관광조리음료과 교수)
올해는 다른 해와는 달리 유난히 초콜릿 시장이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와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초콜릿이란 별다른 의미를 가져다 주지는 못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먹었던 간식이라곤 우리 밭에서 재배된 땅콩과 고구마, 그리고 아버지가 출장길에서 1년에 한 두번 사오신 양갱이 전부였으니까요. 여름엔 수박과 참외, 그리고 복숭아 등 우리 밭에서 생산된 과일을 주로 먹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어렸을 때 먹어 본 적이 없는 간식거리는 별로 먹고 싶지않아 초콜릿은 슈퍼마켓에서 가끔 쳐다만 볼 뿐 그것을 사고 싶다는 욕구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70년대말 석사과정 시절에 마침 열대 작물을 전공하러 온 아프리카 유학생이 가나에서 왔었는데 그 학생보고 제가 한국에서는 가나 초콜릿이 유명하다고 했었던 기억이 떠 오르는 걸 보면 그 당시에도 초콜릿은 꽤 광고 시장에 자주 등장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초콜릿을 입에 대기 시작한 것은 치악산 주위의 산을 등산하기 시작한 때부터가 아닌가 합니다. 산을 오르다가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을 때, 또는 산 정상에서 땀을 훔치다가 슈퍼마켓에서 사온 값싼 그 초콜릿을 입에 가져가면 피로를 풀어주고 에너지를 보충해 주는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해 주었습니다.
초콜릿은 그 동안 비만을 가져다 주고 충치를 발생시킨다고 하여 어린이가 많이 먹어서는 되지 않는 식품이라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감시하고 하였습니다만 올해 등장한 초콜릿은 다크 초콜릿이라고 하여 거기에 함유된 폴리페놀 성분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해 줄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걸 보면 똑 같은 식품이라고 해도 그 식품의 성분을 어떻게 조정하고 또 소비자의 니즈에 맞추어 나간다면 이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것 같습니다.
초콜릿은 카카오 나무에 열려있는 카카오 열매의 껍질을 벗겨내면 그 속에 들어있는 씨앗을 볶아서 가공한 것으로서 그 만드는 공정이 커피와 비슷하고 또 생산지역도 적도를 중심으로한 열대지방이라는 점에서도 커피와 인연이 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커피에도 코코아가 많이 첨가되고 있다는 것도 두 식품간에 궁합이 좋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크 초콜릿이란 카카오속에 들어있는 카카오 매스와 카카오 버터를 합친 성분이 적어도 40% 이상 때론 70% 정도까지 함유된 초콜릿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종래의 값싼 초콜릿은 카카오 열매 고유의 성분은 아주 소량 함유되어 있고 그 밖에 감미료, 대용유지 등이 많이 들어있어서 초콜릿이란 이름만 차용했을 뿐 초콜릿의 기능은 도외시한 제품으로서 생활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삶의 질을 풍요롭게 즐기려는 차원에서 이젠 소비자들의 눈밖에 벗어난 것 같습니다.
밸렌타인 데이가 되면 1년 소비량의 절대량이 이날 판매되고 있다지요. 그 쌉싸름하고 달콤한 맛이 연인들 사이의 사랑을 전달하고 확인하는 수단으로서 이용된다는 것은 그것이 갖는 상업적인 면을 생각하더라도 크게 나쁘게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커피의 원료가 되는 생두와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카카오 열매의 생산지는 그것이 주로 소비되고 있는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이 아니라 적도를 중심으로한 아메리카, 아프리카,아시아 지역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이라는 것도 우리들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60년대 초에 농촌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우리 친구들은 점심 도시락을 갖고 학교에 간다는 것은 아주 희귀한 사례였고 농번기 때는 일손을 도와 주느라 결석을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커피와 카카오가 생산되는 그 지역은 아마도 우리나라 50년대수준 정도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앞 세대들이 그러했듯이 그 곳 아이들은 지금도 하루종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학교를 가지않고 커피와 카카오 열매를 따더라도 하루에 1달러 정도에 지나지 않는 1,000원 정도를 받는것 같습니다. 무게에 따라서 돈을 받기 때문에 철부지 어린이가 빨간 커피 체리 대신에 익지도 않은 파란 체리를 바구니에 많이 섞어서 농장 주인에게 내밀어도 하루 일당도 받지 못하고 울고 있는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케냐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라는 영화에서 보았듯이 커피 생산지로서 유명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생산되고 있는 '케냐 AA'는 국제적으로도 우수한 커피로서 두터운 매니아층을 갖고 있습니다. 나이로비에서 적도를 지나 북쪽으로 400Km정도 올라가면 로로키라고 하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 마을에는 5남매 중의 하나인 레아코노 로제란드라고 하는 5살된 남자아이가 있습니다. 까만 얼굴에 꽤 건장한 체격을 하고 있는 그 아이는 월드 비젼을 통하여 저와 결연 관계에 있습니다. 제가 커피를 즐기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그 아이의 형제들이 열심히 커피 열매를 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제가 보내는 조그마한 관심속에서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삶으로 성장해 주었으면하는 저의 바람이 결연관계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이달말이면 저는 커피와 카카오가 생산되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농장을 방문하게 됩니다. 제가 누리고 있는 삶의 질을 그쪽 어린이들도 누릴 수 있는 계기가 이번 여행에서 만들어졌으면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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