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둘째 아들과 1박 2일의 서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원주에서 태어났지만 외갓집이 그곳에 있어서 셀 수도 없이 다녀왔지만 긴 여름 방학동안 아버지로서 아들과 함께 단 둘이 여행을 다녀오는 것에 의미를 두고 그의 의향을 타진해 보았더니 서울이라면 같이 가겠다고 하여 함께 하게 된 여행이었습니다. 내가 아이들만을 데리고 여행을 한 것은 지난 2003년에 다녀 온 인도네시아 커피 투어가 처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함께한 그 여행은 앞으로 이 애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더라도 그다지 힘들지 않겠다는 결론을 얻게 되어 그 후에 아들과 여행을 자주 하게 된 계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행 계획을 눈 높이에 맞춰서 짠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만 그 아이가 중학교 입학할 때 학교에 제출한 신상 명세서에 장래 희망이 요리사라고 자기 스스로 써 낸 것을 빌미로 하여 그 언저리에서 편성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더니 아들의 의견은 그렇지 않다고 해서 승용차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첫 번째 행선지는 내가 졸업한 대학을 선택하였습니다. 거기를 거쳐서 강북으로 진입할 수 있고 또 서울에 소재한 대학이 규모면에서 지방 대학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여줌으로써 아들로 하여금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게끔 하자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지난 70 년 대에 내가 학생이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학교는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에서 무엇을 느끼냐 하는 것은 아들의 몫이고 나는 다만 가이드 역할만을 수행할 뿐입니다.
아들이 가장 가고 싶어한 곳은 용산 전자상가였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그 날이 휴무여서 다양한 곳을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광화문 교보 문고에 갔습니다. 아들에겐 그 곳이 처음이었고 그 넓은 곳에서 어린 아이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책 읽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오락 게임에 열중하는 아들로서는 그 것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룻 밤을 자고 청와대 뒤편의 삼청동에 들렀습니다. 그 곳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한 곳입니다. 와플과 커피를 잘 하는 곳에서 우린 와플 두 접시를 비웠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아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준 곳입니다. 홍익대 앞 초콜릿 아카데미에서 내 아들은 설거지를잘 하고 마른 빨래 감을 잘 개키고 또 진공 청소기로 넓은 집안 청소도 잘 한다고 소개하였더니 요즘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타입이라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이왕이면 요리를 한 가지라도 잘 하는 것이 있다면 더 점수를 딸 수 있겠다는 나의 말에 20대 아가씨도 밝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들도 내가 소개하는 말에 그리 싫지 않은 표정을 보여서 그 아이의 내면을 내 나름대로 유추해 보았습니다. 점심은 아들이 추천해 준 이태원 레스토랑에서 가졌습니다. 주문한 등심 스테이크가 나의 판단으로는 약간 질긴 것 같았습니다만 아들은 외갓집 식구들과 전에 간 적이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서울에서 그 정도의 가격으로 그와 같은 내용의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아들의 판단이 정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은 그 동안 주로 강북을 다녀와서 강남은 생소한 모양입니다. 다리를 건너서 강남에 가 보는 것도 그 아이에겐 흔치않은 경험입니다. 논현동에서 프랑스 케이크 아카데미를 들리고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지나서 현대 백화점에서 레드 와인 한 병을 구입하였습니다. 어제 저녁 식사 시간에 청하 한 병에 술잔을 하나 더 추가로 부탁하였더니 주인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만 나는 내 아들이 성인이 되어서 폭탄주보다 와인 한 잔 정도를 즐길 수 있는 삶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 때로는 식사를 할 때 한 두 모금 정도의 12% 전 후의 알코홀 음료를 권할 때가 있습니다.
당초 2박 3일로 예정하였던 여행이 1박 2일로 전부 다녀오게 되어 늦은 저녁 시간에 원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틀 동안 두 편의 영화를 같이 보았고 시내를 거닐 때면 원주에서와는 달리 손을 잡고 걷게 된 것도 이번 여행에서 얻은 즐거움이었습니다. 기회를 만들어서 앞으로도 아들과 함께 여행을 자주 해 보고 싶습니다. 오락 게임을 너무 열심히 하는 아들에게 세상에는 즐거운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의 기억 속에 아빠와 함께한 여행의 편린이 자리할 수 있다면 그의 삶이 보다 풍요로워 지지 않을 까 생각해 봅니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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