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흐르는 강

허경택의 커피 로오드 -3 두문동 재 넘어 커피 향기를 나르고

닥터허 2010. 4. 21. 11:56

두문동 재 넘어 커피 향기를 나르고


허경택(상지영서대학 관광조리음료과 교수)


  까마득한 오랜 세월 전에 경험했던 일들 중에서, 머리 한 쪽 켠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불현듯 영화의 필름처럼 다가오는 장면이 있다. 아껴두고 싶은 추억이 있었다. 40년이 다 되어가는 그때, 나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하늘 아래 첫 고개라고 하는, 해발 1,268미터가 되는 두문동 재를 행군하고 있었다.  육중한 군용 트럭도 그 재를 넘어가지 못하고 허덕대서, 우린 걸어서 그곳을 넘어갔다. 산꼭대기에 두문동재라고 표시되어 있는, 빛바랜 통나무가 우릴 맞이하고 있었다.  두문동(杜門洞이라고 하는 지명이 예사롭지 않아, 나는 내무반에 돌아와서 그 재를 넘은 소감을 수첩에 정리해 두었었다. 언젠가는 다시 그 곳을 가보고 싶다고. 

   매주 금요일 오후에, 태백시에 있는 황지정보산업고등학교를 가고 있다. 자동차로 원주에서 1시간 30분이 소요 된다. 제천에서 영월, 고한 사북을 지나 태백으로 방향을 잡으면, 두문동재 터널이 나온다. 해발 1,048미터라는 이정표와 함께.  "아하, 여기가 거기였구나". 그 오래전 젊었을 때의 그날이 다가온다. 감회가 새롭다. 그 때는 무거운 배낭에 소총을 들고 이 재를 걸어서 지나갔는데, 오늘은 자동차에 갓 볶은 신선한 커피와 커피 추출 도구를 싣고, 산의 정상 아래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것이다.  커피 향기가 그 옛날의 소중한 추억을 가져다 주었다.

   태백 교육청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을 위하여 커피 교육을 맡아달라고 하였을 때,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던 그곳의 지리적 위치가, 한동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게 하였다. 그러다가 가게 된 것은, 낙동강과 한강의 기원이 되는 황지연과 검룡소, 태백산의 천제단, 해발 700미터의 고원이 가져다 주는 감성의 이끌림이었다. 낙동강이 멀지않은 곳에서 자라고, 한강이 있는 곳에서 대학 생할을 보냈기에 동떨어져 있는 그 두 곳이 어떻게 이곳에서 발원하였을까? 신기하기만 하였기 때문이다. 가야와 신라 문명이, 그리고 현대의 서울 문명을 번성케한 두 줄기의 거대한 강이 이 조그마한 샘에서 시작되었다니, 놀랍기만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 이물에 커피를 끓이면 아주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질꺼야. 이런 기대감으로 지난 가을학기부터 눈이 오는 위험을 무릅쓰고 거기를 가고 있다.

   황지정산고는 고등학교답지 않게  에스프레소 머신이 설치되어 있다. 고등학교에도 바리스타를 양성하기 위하여 교육 과정을 도입하고 있는 학교가 1,2년 전부터 전문계 고등학교 위주로 나타나고 있지만, 강원도에는 이 학교가 아마 첫 사례인 것 같다. 올망졸망한 고등학생에 가구를 손수 제작하는 남편과 같이 커피전문점을 하겠다고 오는 주부, 인스턴트 커피회사 직원, 요가 선생님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저녁 시간을 할애하여 커피 공부를 하고 있다.  

   인구가 5만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작은 소도시인데다가, 아직까지는 그 옛날의 번창하였던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묘안이 나타나지 않은 시점에 시작된 커피 공부가 활성화 되어, 낙동강과 한강의 물줄기처럼 번창하여, 청정한 이미지로 커피 산업을 발달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오늘도 거기를 가고 있다.